준비 안 된 중남미여행, 쿠스코로 가는 길

2019. 6. 13. 22:03여행/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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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경으로도 유명한 쿠스코

 


남미 여행을 하며 많은 사건이 있었고, 쿠스코에서 리마를 갈 때 비행기가 악천후로 취소된 것도 그중 하나의 사건일 뿐이었다.

쿠스코를 보통 여행자들, 대부분의 사람들이 꿈의 여행지로 꼽는 이유 중 하나는 마추픽추때문이고, 그 때문인지 쿠스코에 많은 관광객들이 오고, 그래서 기념품을 사기도 참 좋은 도시이다. 그리고 야경마저도 따뜻한, 기분 좋은 도시이다.

하지만 보이는 것과 달리 고산지대에 위치해 무척이나 춥고 고산증세가 나타나는 사람에게는 힘든 도시가 될 수 있다. 그것과는 별개로 내게 있어 쿠스코가 그리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지 않았던 것은 쿠스코로 향하는 일련의 과정 때문일 것이다.

보통 쿠스코로 가는 길은 대부분의 여행자가 비슷할 것이다. 페루의 수도인 리마에서 비행기를 타고 쿠스코로 향하는 방법, 물론 버스도 있지만 장거리 버스이기도 하고 도로의 상태, 페루 버스의 상태 등 여러가지 여건들을 복합적으로 생각했을 때 리마에서 쿠스코로 이동할 때 비행기가 가장 합리적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에서 배낭여행객들이 주로 이용하는 저가항공의 경우 비행기 연착이 매우 잦은 편이고, 취소가 되기도 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저가항공에서 이런 부분에 대해 보상을 해주는 것은 전혀 없다.

아무리 열을 내면서 항공사 직원에게 항의를 한다해도 돌아오는 것은 권한이 없고 해 줄 수 없다는 말 뿐이었다.

사실 지금은 망한 LC peru 는 사실 악명 높기로 유명했던 저가 항공이었다.(2018년, 내가 비행기를 타고 얼마 후 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비행기를 탔던 시점이 9월 중순이었다.) 하지만 리마 - 쿠스코 구간이고, 사실 몇번의 여행 경험을 통해 이동시간을 넉넉하게 갖는 편이었기에, 괜찮을 거란 안일한 생각으로 예약을 했었다. 

지금은 망한 LC Peru의 비행기표

그런데 이런 일이 막상 내게 닥치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제대로 겪을 수 있었다.

리마에서 쿠스코로 가는 비행기편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처음에는 연착이라고 했던 직원이 2시간이 지난 후에야 비행기가 취소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모든 승객들이 가서 따지기 시작했다. 스페인어로 온갖 소리를 내었다. 사실 스페인어는 빠르기도 엄청 빠르고 이 사람들도 목소리 크기로는 어디 가서 지지 않는 편인 것 같은데, 남미 여행을 하며 목소리가 이렇게 크게 들렸던 적은 손꼽을 정도였던 것 같다. 어떤 승객은 흥분해서 막 따지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본인이 일을 하러 쿠스코에 가야 하는데, 내일 출근을 해야 하는 데 어떻게 하냐고 묻기도 하며 어떤 사람은 쿠스코에 있는 본인의 가족이 보내준 동영상을 직원에게 보여주며 이렇게 날씨가 좋은데 대체 왜 비행기를 띄울 수 없는 거냐며 분을 터뜨리는 사람도 있었다.

다른 항공사의 항공 스케줄을 살펴보니 그나마 라탐항공에서는 운행하는 편이 있었기에 다른 항공사와 연결을 해줄 수 있냐 물었지만, 안된다는 답변뿐이다.

사실 저가항공이기에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제공되는 것도 아무것도 없었고, 그저 다음날 비행기표로 다시 예약을 잡아주는 것뿐이었다. 그마저도 보딩게이트 근처 항공사 데스크 앞쪽에 있다 보니 주위의 흥분한 다른 승객들 틈바구니에서 빠져나올 수 없어서 같이 있다가 수하믈을 뒤늦게 찾고 옆의 안내데스크에 늦게 도착했더니 오전 비행기표는 이미 꽉 차있었다. 그래서 일단은 다음날 같은 시간대의 비행기표로 이름을 올려놓고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한 생각을 했다.

이미 공항에 도착해있는 상태라서 그런지 다시 리마 시내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숙소가 air bnb로 구했지만, 숙소 주인은 친절했지만 뭔가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느낌이었다.  숙소가 아늑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쿠스코를 다음날 가게 된다면, 바로 그다음 날 마추픽추 잉카 트레일을 신청했기 때문에 쿠스코를 둘러볼 여유가 없을 것 같아서 바로 오늘 출발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래서 항공사 Check-In 창구 앞에서 혹시라도 빈 좌석이 있는지, 아니면 오늘 다른 비행기로 갈 수 있는 것이 있는지 직원에게 물을 때였다.

마침 직원이 알아보겠다고 하고 자리를 잠깐 비운 사이 뒤에서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 사람들은 나와 같이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던 쿠스코행 승객들이었다. 아까 보딩게이트 앞에서 봤었던 친구들, 그 친구들은 내게 말을 걸어오며 쿠스코로 가는지 확인해왔다.

본인들도 쿠스코로 향하는데, 마침 곧 출발하는 아레키파행 비행기를 타고 아레키파에 가서 야간 버스를 타고 쿠스코로 이동할 거란다.

그렇게 하면 내일 오후에 비행기를 타는 것보다 더 빨리 도착할 수 있을 거라며, 거기다가 숙소 비도 세이브할 수 있다곤 내게 말해오는 것이다.

거기다가 결정적으로 그 친구들 중 한 명인 요 셀린의 삼촌이 아레키파 버스 터미널에서 일을 하고 계신단다. 그 말을 듣고 바로 신뢰도가 올라갔고, 그런 내게 빨리 결정하라고 재촉해왔다.

당시 나는 유심을 사지 않았기 때문에, 인터넷 검색도 할 수 없었고, 지인에게 연락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이런 꼬임을 듣다 보니, 혹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그 꼬임(?)에 넘어가 아레키파행 비행기를 받아서 아레키파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저녁에 도착한 아레키파 공항

어떤 일이 닥쳐올 지에 대한 고민을 하지 못한 채, 아레키파행 비행기는 출발을 했고, 예정 시간인 저녁 98시 무렵 아레키파 공항에 도착했다. 내 마음 급했지만, 이 친구들은 여유가 넘쳤고, 수하물을 찾고서 공항 밖으로 나오는 데까지만 한시간 가량이 걸렸고, 그러다보니 저녁 9시가 다되어갔다.

그 여유가 독이 될 줄은, 그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힘든 여정이 될 줄은 전혀 몰랐었다.

공항밖으로 나오자마자 요셀린의 삼촌에게 전화를 했고, 삼촌과 한동안 통화를 하던 요셀린은 무언가 잘 안된 거 같은 표정으로 우리에게 돌아왔다. 삼촌 말로는 지금 시간이 늦어서 버스가 없다고 한단다.

일단 삼촌이 터미널에 계시니 다 같이 터미널로 콤비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내게 남미의 사람들이란 ‘항상 진심인 사람들’이라고 답한다.
특히 이렇게 여행을 다니면서 길을 물을 때, 너무나 고맙게도 본인들의 노력이 닿는 데까지 도와주는 편이다. 
하지만 보통은 그들도 잘 모르는 게 많고, 오히려 엉터리로 알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일을 더 힘들게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잘못된 정보로 고생한 적이 많아도 원망할 수 없었다. 본인들이 잘 모르는 경우에도 옆 사람에게 묻고, 전화해주고, 검색까지 해서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하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항상 그들의 진심이 느껴지기에 고마움이 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현지인들이라고 모든 정보에 대해 정확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일단 터미널에 도착해서 삼촌분께 인사를 드리고, 아쉬운 마음에 다 같이 버스 창구마다 돌아다니며 쿠스코를 가는 버스가 있는지 확인했었다.

하지만 이미 알고 있던 대로 오늘은 막차가 이미 떠났고, 출발을 할 수 없었다. 그제야 배고픔이 몰려와서 다 같이 터미널에 있는 음식점에서 Caldo를 하나씩 시켜 먹으면서 어떻게 쿠스코로 가야 할 지에 대해 의논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친구들의 생각은 이왕 이렇게 된 거 아레키파를 구경하고 쿠스코로 갈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쿠스코까지 가는 데 10시간가량 버스를 타고 가야 했기 때문에, 나는 무조건 다음날 도착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야 잉카 트레일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그 친구들에게 미안하지만 나는 먼저 출발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니 다들 같이 오전에 가겠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전망대까지만 보고 가자고 했었다. 이렇게 착하고 순수한 아이들이었다.

그리고 마침 장사를 마치고 오신 삼촌분께서 그러려면 하루 자고 가야 할 텐데, 하룻밤을 묵게 해 줄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남는 방은 없지만 창고로 쓰던 곳을 묵게 해 주신다는데,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기분이었다.

장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그 삼촌분의 가족들에 우리 네 명까지 차에 구겨져서 타게 되었고, 차가 터미널에서 멀어져 가면서 보게 된 신기한 광경은, 집들이 전부 공사 중인 곳들이 많았다.

솔직히 너무 으슥해지는 것 같아 불안한 마음도 들기는 했었다. 그러다가 내린 어느 집, 집안으로 들어가는데 이 집도 집이 공사 중으로 보이는 것이었다. 그렇게 창고에 짐을 풀고, 씻으러 갔는데 영하의 날씨인데 찬물만 나오는 것을 보고 경악을 했고, 화장실 올라가는 길이 나무판자를 덧 대만 든 계단이었다. 창고로 쓰던 방이라서 그런지 먼지가 자욱했고, 온갖 잡동사니가 가득했지만 그렇게 다 같이 고생을 하고 누웠더니 바로 잠이 들 수밖에 없었다.

현지인의 집에서의 풍경

그렇게 다 같이 자고 일어난 후, 씻으러 갈 때 마주한 풍경이 생각보다 좋았었다. 그리고 신기하기도 했고, 페루나 볼리비아에서는 이렇게 집을 조금씩 조금씩 올리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한다. 돈을 벌어서 조금씩 올린다는 말을 듣게 된 후에 이런 풍경이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페루도 지진이 많은 편이라 이런 부분에 자유로울 수 없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집을 짓는데 조금 더 관대하다고 해야 하나. 꼭 완성되지 않아도 되는 그런 마음으로 집을 짓는 것 같다.

그렇게 하룻밤을 현지인 친구의 삼촌네 집에서 자고 난 후, 아레키파 전망대까지만 구경 갔다가 버스를 타러 가기로 했다.

내 마음은 급한데 얘들은 사진 찍느라 신나서 막 돌아다니고, 그 모습을 보며 나도 여유를 다시 찾긴 했는데, 그래도 불안하긴 했었다.

조금은 촉박하게 터미널로 가서 터미널 세를 내는 것까지 빠르게 진행하고 힘들게 버스에 올랐다.

근데 보니까 버스가 까마도 아니고, 그냥 우리나라의 시외버스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 데다가 10시간가량 타고 가는 데 길의 상태도 좋지 않아서, 너무 힘들었다.

근데 신기한 게, 버스를 타고 가다 보면 중간중간 조그만 도시에서 내리는 사람이 있고, 타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중간중간 노점상들이 타서 과자나 먹거리, 음료까지 판매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정말 우리나라의 6070년대에는 이러지 않았을까 싶은 마음이었는데, 무엇보다 버스가 너무 불편해서 힘들었었다.

그런 와중에 이 친구들은 먹을 것도 구매하고 음료도 구매해서 나눠주고, 나도 무언가 사고 싶어서 과자를 사서 같이 나눠 먹었다.

그렇게 힘들게 버스를 타고 쿠스코에 도착한 순간 너무 행복했는데, 또 이 착한 아이들과 헤어진다는 생각에 아쉬운 마음이 가득했다.

나중에 마추픽추에서 만나서 인사하자고 약속하면서 헤어지기 전 서로 연락처를 교환했었다.

이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서, 만난 좋은 인연으로 안 좋은 기억이 될 뻔한 경험이 좋은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이런 게 여행에서 오는 즐거움이 아닐까?

만약 쿠스코행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면 이런 인연도 만나지 못했을 테고, 이런 경험을 해보지 못했겠지.

 

 

아레키파 전망대에서 바라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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